“3요?”를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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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views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양심을 깨운다.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내게 하는 담대함은 언약으로부터 나온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은 너무 약하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도 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까? 우리의 힘으로 믿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기도'이다. 나아가 금식하면서 철저하게 내 자신을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식이라는 의식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벗어나기 원하는 간절함이 본질이다.
Notes
Transcript
본문: 에스더 4:9-17
제목: “3요?”를 이기는 법
주제: 하나님의 언약을 선택하기 위해선 기도가 필수다.
목적: 기도로 믿음을 강하게 하는 친구들 되게 하소서.
평형깨기
여러분, “3요”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바로 MZ세대가 직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인 “왜요? 제가요? 지금요?”라는 3대 질문을 인터넷에서는 “3요”라고 말합니다. 기업에서는 이 “3요”주의보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그동안 회사가 하는 일을 그냥 순응하고 군말 없이 따라갔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요즘 세대는 일단 업무가 주어지면 이 “3요” 질문을 하면서 소극적인 태도에 직장 상사들의 고충이 있다고 하죠.
여러분도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학교나 교회에서 선생님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걸 부탁하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제가요?” 아니에요?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중등부에서 사역하면서 여러분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제가요?”였던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람이 무언가를 시킬 때도 회의적인 반응을 하는데, 하나님한테는 이렇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명령하시면, 정말 여러분은 군말도 하지 않고 그 즉시 순종하실 자신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만약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럼 여러분 이렇게 대답하겠죠? “지금요? 제가요?”
갈등심화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기심입니다. 모든 인간에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이기심은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데, 어떤 경우냐면 자신의 생명을 누군가가 위협하는 경우,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기심을 사용할 수 있어요. 이러면 정당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해서, 이 이기심을 나쁜 쪽으로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여기에 내 생명을 걸어서 내 이익을 사수하려고 하는 경우죠.
이런 경우들이 있죠. 어린 형제들이 사는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형과 동생이 컴퓨터를 사수하기 위해서 서로 다투는 경우가 있어요. 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이기심이 선하게 사용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성공해서 이웃을 돕는 일을 할 수 있는데, 이기심이 나쁘게 발동되면 우리는 공부 잘 해서 일단 나의 명예를 이루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나쁜 이기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세요? 거기에 생명을 걸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마치 내 목숨이 위협받는 것처럼 태도가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기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냐면,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너의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대답해 보세요. 가능합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믿음을 요구하고 계세요. 부담스럽게 들리겠지만 이게 성경입니다. 이건 믿음이 있어도 웬만한 믿음으로 안 돼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는 믿음이 가능할까요? 답변은 간단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어떻게 생명을 거는 믿음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극복
하만이 유다인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법 조항을 전국에 반포합니다. 모든 유다인들이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애통하며 금식하기 시작했어요. 모든 도성에 우는 소리가 가득한 겁니다.
에스더는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신하를 모르드개에게 보내서 무슨 일인지 물어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만이 법을 고치려고 재물을 바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에스더에게 이렇게 부탁하죠. “에스더야, 너의 민족을 위해서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해라” 그러자 에스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만일 왕이 규를 내밀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왕이 저를 안 부른지 벌써 한 달째입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정말 사랑받는 왕후였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왕이 에스더를 한 달이나 되도록 만나주지 않는 겁니다. 왕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도 왕의 사랑이 식었던 모양입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을 때 왕에게 나아가는 것이 왜 위법일까요? 이런 경우 왕을 암살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르지도 않는데 왕을 만나고자 하는 경우 왕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가차 없이 죽였죠. 에스더가 그래서 불안해 한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에스더의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기적이죠. 우리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이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지금 “너가 목숨을 건지려고 왕에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너는 멸망할 거야. 하나님이 너를 왕후의 자리에 앉히신 이유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임을 왜 모르니?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르드개가 협박하는 것 같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 한 마디 때문인데요, 바로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유다인들을 무슨 일이 있든지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모르드개는 지금 에스더에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강한 신뢰를 촉구하고 있는 겁니다. 유다인들은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는 약속을 신뢰하라는 것이죠.
이 말을 듣고 에스더가 각성을 합니다. 16절 읽어볼까요?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여러분,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일평생 유다인인 것을 숨기면서 살았습니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한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감추고 페르시아인처럼 살았습니다. 모르드개는 돌아왔지만, 에스더는 아직도 하나님의 약속을 배제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기적이었어요.
하지만 에스더는, 유다인들이 무조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각성했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즉 왕에게 나아가는 것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죠. 죽게 되더라도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에스더는 죽음도 각오할 수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죽음도 두렵지 않게 합니다.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을 깨우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면, 우리가 세상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게 하는 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우리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지가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연약한 모습을 갖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돌아오게 할 것이고, 회복시키실 것이고, 영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끄러운 모습 가득해도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죠. 마치 에스더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 하나님을 믿는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친구들 있나요? 이 시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러분의 의지보다 훨씬 크십니다.
복음선포
하지만, 이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친구들은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이 믿음을 자신있게 드러내며 사십니까? 아니면 숨기고 사십니까? 우리도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하지 못하고 숨기며 살고있지는 않나요?
그 이유도 바로 이기심 때문입니다. 세상이 마치 나의 생명을 주관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 7장에 정말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요, 같이 읽어봅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모습이 바로 원래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것이 나의 정체성인데, 죄가 나를 사로잡습니다. 내게 영생이 주어졌다는 것을 믿는데, 교회 밖에 나가기만 하면 위축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 16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금식은 “금식기도”를 의미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금식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여기서 금식은 회개의 상징입니다. 즉 회개기도를 의미해요.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왕후로서 부귀영화를 누리기에만 급급했던 죄악로부터 돌이키겠다는 결단을 보여주기 위해 에스더는 금식기도/회개기도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려면 죄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나의 회개기도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회개기도도 필요합니다. 나 혼자만으로는 세상을 대항하고 하나님 약속을 붙잡는 담대함이 잘 안 생깁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더욱 위로를 받고 믿음의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회개기도 자체가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있어야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강하게 신뢰하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께 생명을 거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당장 순교자가 되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나의 죄로부터 돌이키기 위해 기도하는 것, 이것이 생명을 거는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매일 시간을 갖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 전에 5분이라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또 세상적으로 살았습니다. 죄로부터 돌이키길 원합니다. 내게 믿음을 주세요. 내일은 주님의 약속을 붙들며 살게 해주세요.”라는 회개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여러분의 모든 삶을 주님께 드렸다는 것을 뜻해요. 생명을 드렸다는 겁니다. 기도 자체가 생명을 거는 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고뇌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연약해서가 아닙니다. 기도를 안 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을 뜻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걸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의 생명을 우리 맘대로 쓰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분리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신학생이 기도를 많이 안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성경적 지식이 많다고,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안하면 내 생명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비전제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나를 다시 회복시킵니다. 죄악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생명을 걸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생명을 거는 믿음이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회개기도입니다. 나의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건이나 위기를 통해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는 때를 반드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돌이키게 하셔서, 정신차리게 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창 교회가 비대면 예배를 드렸었을 때, 깨어있으셨던 교회 지도자분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부 탓, 코로나 탓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저도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이나 학교나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세상적인 삶에서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세요. 죄로부터 돌이키겠다는 회개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하는 담대한 믿음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사세요. 저는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친구들 몇몇을 알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았죠. 여러분도 매일 자기 전에 최소 5분이라도 기도하고 자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거룩함으로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기도로 믿음을 강하게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